* 초막절은 유대력으로 티슈리월 15일(9월 26일)부터 일주일 동안 지켜지는데, 우리 교회는 유대인들이 읽는 알리야를 매일 묵상할 수 있도록 주간 단위로 편집하다 보니 이번 주간(9월 20~26일)에 읽게 됩니다.
유대 절기가 안식일과 겹치는 경우는 그 주간의 토라 포션이 다음 주로 밀리거나, 다른 포션과 합쳐지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번 초막절이 그런 경우입니다.
초막절(Sukkot, סֻכּוֹת)은 이스라엘의 세 가지 순례 절기(Shalosh Regalim) 가운데 하나로, 유월절(Pesach), 오순절(Shavuot)과 함께 모든 이스라엘 남자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던 절기입니다. 레위기 23장은 초막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레 동안 너희는 초막에서 지내야 한다.… 이렇게 하여야 너희의 자손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을 초막에서 살게 한 것을 알게 될 것이다."(레 23:42-43) 초막절은 매년 티쉬리월(Tishrei) 15일부터 7일 동안 지키며, 이어지는 여덟째 날은 쉐미니 아쩨렛(Shmini Atzeret, 성회)으로 구별됩니다.
초막절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수카(Sukkah, סֻכָּה)에서 왔습니다. 수카는 임시로 만든 작은 초막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후 40년 동안 광야를 지나면서 안정된 집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하시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를 공급하시고, 하나님의 임재로 보호하셨습니다. 따라서 초막절은 이렇게 고백하는 절기입니다. "우리의 안전은 우리가 만든 성벽이나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있다."
초막절은 또한 수장절(Feast of Ingathering)이라고 불립니다. "너희는 밭에서 애써 가꾼 것을 거두어들이는 한 해의 끝무렵에 수장절을 지켜야 한다."(출 23:16) 이스라엘 농경 사회에서 한 해의 모든 수확을 마친 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였습니다. 따라서 초막절은 과거(광야에서 보호하신 하나님), 현재(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 미래(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함께 바라보는 감사의 절기입니다.
초막절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절기가 아닙니다. 선지자 스가랴는 마지막 때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 나아와 초막절을 지킬 것을 예언합니다. "주님께서 온 세상의 왕이 되실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은 오직 주님 한 분만을 섬기고, 오직 그분의 이름 하나만으로 간구할 것이다.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온 모든 민족 가운데서 살아 남은 사람들은, 해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다."(슥 14:9, 16) 초막절은 이스라엘만의 축제가 아니라 모든 민족이 하나님 앞에 모이는 하나님 나라의 그림입니다.
유대인들은 초막절 동안 집 밖에 임시 초막을 세우고 그 안에서 식사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초막은 화려하거나 견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하고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신앙 고백입니다. "인간의 견고함보다 하나님의 보호가 더 크다."
초막절에는 네 종류의 식물을 사용합니다(레 23:40). 룰라브(Lulav): 종려나무 가지, 하다스(Hadas): 도금양(잎이 무성한 나무 가지), 아라바(Aravah): 시냇가의 버드나무, 에트로그(Etrog): 유자 열매(아름다운 나무 열매). 이 네 가지를 함께 흔드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 되어 기쁨으로 예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초막절의 가장 중요한 신약적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여기서 "거하시매"라는 헬라어 스케노오(σκηνόω)는 "장막을 치다"라는 뜻으로, 광야에서 하나님이 성막(미쉬칸) 가운데 임재하셨던 것(출 25:8)과 같은 어근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초막절이 그 광야 시절 하나님의 보호와 임재를 기념하는 절기이듯,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인간 가운데 세우신 궁극적 임재의 처소이십니다. 또한 초막절 마지막 날 예수님은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이는 초막절 동안 행해지던 물 붓는 의식을 배경으로 한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초막절이 기다려 온 하나님의 임재와 생명의 근원이 자신에게 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초막절 토라 읽기는 의외로 초막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의 거룩함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레위기 22장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아무렇게나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합당해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배의 핵심이 사람의 정성이나 형식보다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바르게 아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후 레위기 23장은 "여호와의 절기"를 소개합니다. 절기는 사람이 만든 종교 행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나기 위해 정하신 시간입니다. 히브리어 모에드(מוֹעֵד)는 "정한 때", "만남의 시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막절은 한 해의 마지막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였지만, 그 중심에는 풍요 자체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예배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배의 형식이나 행위에 집중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 앞에 우리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거룩한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제사는 완전하지 않았고, 반복해서 드려져야 했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제사의 의미가 완성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 7:27) 예수님은 죄 없으신 완전한 제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동물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초막절을 포함한 모든 절기의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만나시려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분명하게 이루어졌습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을 내가 드리는 의무로 생각합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기 위해 주신 은혜의 시간으로 받아들입니까?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일 년의 농사를 마치고 수확을 거둔 후 지키는 감사의 절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풍요로운 때에 오히려 백성에게 초막에 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히브리어 수카(סֻכָּה)는 임시로 만든 거처를 의미합니다. 초막은 튼튼한 집처럼 안전하지 않았고, 비와 바람을 완전히 막아주는 곳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백성을 연약한 거처에 머물게 하심으로, 그들이 광야에서 경험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자신의 힘과 소유를 의지하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신다." 이것이 초막절이 가르치는 믿음입니다. 우리도 삶이 안정되고 풍요로워질수록 하나님보다 우리의 능력, 재산, 계획을 더 의지하기 쉽습니다. 초막절은 우리가 어디에 거하는지가 아니라, 누가 우리와 함께하시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초막절의 중심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초막에 거했지만, 하나님은 성막을 통해 그들 가운데 함께하셨습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게 하라."(출 25:8)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여기서 "거하시매"라는 표현은 헬라어 스케노오(σκηνόω)로 "장막을 치다"라는 뜻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하나님께서 인간 가운데 장막을 치신 사건으로 설명합니다. 초막절은 광야에서 함께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절기였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가운데 오신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의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심보다 더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초막절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절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이 모든 민족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절기입니다. 민수기 29장은 초막절 동안 드려지는 특별한 제사를 기록합니다. 7일 동안 총 70마리의 수송아지가 하나님께 드려지는데, 유대 전통에서는 이 70이라는 숫자를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열방의 수와 연결하여 이해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목적, 곧 열방을 향한 복의 통로가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해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기 원하셨습니다. 초막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백성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오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받은 은혜를 자신 안에만 머물게 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공동체로 부름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창 12: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약속은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마 28:19) 초대교회는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고, 하나님의 백성은 혈통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확장되었습니다. 초막절이 바라보던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시작되었고,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하나님께서 나를 복의 통로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초막절은 단순히 초막에서 살았던 과거의 생활을 재현하는 절기가 아니라, 광야에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난 후 걸어간 광야의 길은 인간적으로는 불안한 여정이었습니다. 먹을 것도 부족했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셨고, 만나를 내려 날마다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셨습니다. 신명기는 이 광야의 시간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낮추시고 시험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신 시간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라."(신명기 8:3)
초막절은 광야가 힘든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분명하게 경험한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우리 삶에도 광야와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자기 백성을 먹이시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깊은 의미에서 자신이 참된 생명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한복음 6:51) 광야의 만나는 이스라엘의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게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죽음 가운데 있는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성막 가운데 함께하셨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까이 오셨습니다. 초막절이 기억하는 광야의 은혜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풍요로운 곳에 있을 때만 함께하시는 분이 아니라, 광야를 지날 때에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 나를 향한 질문지나온 삶을 돌아볼 때, 광야 같은 순간에도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 경험을 떠올려 보세요.
스가랴 14장은 하나님의 마지막 승리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바라보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왕으로 다스리시는 날, 모든 민족이 여호와께 나아와 예배하게 될 것을 선포합니다. 특별히 스가랴는 그날에 열방이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경험했던 것을 기억하는 절기였습니다. 그런데 스가랴는 이 절기의 의미를 이스라엘 안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미래의 모습으로 확장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그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복을 독점하는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세상에 전하는 통로로 부름받았습니다.
초막절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나 자신만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을 향해 흘려보내고 있는가?"
스가랴가 바라본 모든 민족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마 28:19) 복음은 특정한 민족이나 지역에 제한되지 않고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입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형성되었습니다. 초막절이 바라보았던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으며, 하나님 나라의 완성 가운데 온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하나님께서 나를 복의 통로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7장은 예수님께서 초막절을 배경으로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초막절은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물을 공급하셨던 은혜를 기억하는 절기였으며, 동시에 장차 하나님께서 주실 구원의 시대를 소망하는 절기였습니다. 당시 초막절 마지막 날에는 제사장이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길어 성전 제단에 붓는 의식이 행해졌습니다. 이 의식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생명을 주시고, 장차 메시아 시대에 풍성한 은혜를 베푸실 것을 기다리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예수님은 단순히 물을 주시는 분으로 자신을 소개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참된 생명의 근원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을 설명하며 "생수의 강"이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의미한다고 기록합니다(요 7:39). 초막절이 기억하는 물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생명을 살렸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물은 죄와 죽음 가운데 있는 인간을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도 끊임없이 세상의 인정과 성공, 소유로 마음의 갈증을 채우려 하지만, 참된 만족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이사야는 구원의 날에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사 12:3). 예수님은 자신에게 나아오는 자에게 생명의 물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요한은 그것이 성령의 은혜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성령께서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믿는 자 안에 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보여줍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성막 가운데 거하셨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가운데 오셨으며, 이제 성령을 통해 믿는 자 안에 거하십니다. 초막절의 약속인 "하나님이 함께하심"은 성령 안에서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경험됩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내 마음의 갈증을 무엇으로 채우려고 하고 있습니까?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새 창조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계 21:3) 여기서 "장막"이라는 표현은 헬라어 스케네(σκηνή)로, 구약의 성막과 초막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성경 전체의 역사는 하나님의 한 가지 목적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거하셨고, 광야에서는 성막을 통해 임재하셨으며,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단절이 생겼습니다. 초막절은 광야에서 함께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장차 하나님께서 다시 모든 것을 회복하실 날을 바라보는 절기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때로 초막처럼 불안정하고 연약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소망은 환경의 안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약속에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간 가운데 임재하시는 새로운 방식이 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로 인해 끊어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성령께서는 믿는 자 안에 거하시며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우십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그리고 마지막 날,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한 임재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초막절은 과거 광야의 기억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어 새 창조에서 완성될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보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떠나지 않으시며, 마침내 영원히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나를 향한 질문장차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할 소망을 가진 사람으로서, 오늘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 중 떠오르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것을 기록해 보세요.
* 히브리어 단어 '알리야'는 '높이 솟음' 또는 '올라감'이라는 의미입니다. 유대교 회당에서 토라를 낭독할 때, 신자들이 율법 낭독에 참여하는 것을 'Aliyah'라고 합니다. 즉, '토라 낭독대에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영적인 상승을 상징합니다. 매일 읽을 분량을 'Aliyah'라고 하는 것은 말씀 앞에 설 때마다 한 단계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을 상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