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지누(Ha'azinu)"라는 파르샤의 이름은 "귀를 기울여라(Listen)"는 뜻이며, 신명기 32:1절에 나오는 첫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하아지누의 대부분은 한 편의 노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세는 죽는 날, 이 노래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러 주었습니다. 그는 이 노래를 통해 백성과 함께 걸어온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며, 비록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크게 진노하실지라도 결국에는 반드시 자신의 백성에게 다시 돌아오실 것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 노래는 파르샤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첫 단어를 따라 "하아지누(귀를 기울여라)"라고 불립니다. 시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비유와 상징적인 표현들이 사용됩니다.
"여호와의 분깃은 그의 백성 곧 야곱이라...주께서 그를 광야에서, 황량하고 짐승이 울부짖는 사막에서 만나시고, 그를 둘러 보호하시며 깨우치시고,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 둥지를 흔들어 새끼를 깨우며 그 위를 맴돌다가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아 등에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도다... 그를 땅의 높은 곳에 오르게 하시고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단단한 바위에서 기름을 빨아 먹게 하셨도다."
"너를 낳으신 반석을 네가 저버리고, 너를 내신 하나님을 잊었도다."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그의 아들들과 딸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진노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기고 그들의 마지막이 어떠할지를 보리라. 그들은 변덕스러운 세대요, 신실함이 없는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너희 민족들아, 그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피를 갚으시고, 그의 대적들에게 보복하시며, 그의 땅과 그의 백성을 속량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파르샤의 마지막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느보산으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약속의 땅 이스라엘을 바라보게 되지만, 그 땅에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본 후 그의 영혼이 하늘로 돌아가고, 그가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하늘과 땅, 곧 이 세상에서 영원히 남아 있을 증인들을 불러 자신이 전할 말씀의 증인이 되게 합니다. 토라는 비와 이슬이 식물을 살리는 것처럼 세상에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고 그는 선포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의롭고 공의로우신 분이시며, 모든 부패와 타락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감사를 잃고 자신들이 받은 모든 복의 근원을 깨닫지 못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비롯된다고 선언합니다.
모세는 죽음을 앞두고도 먼저 백성의 죄보다 하나님의 성품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반석, 하시는 일마다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은 올곧다."(4절) '반석(צוּר, Tzur)'은 하아지누에서 반복되는 핵심 이미지입니다. 광야에서는 반석에서 생수가 흘러나왔고, 신약은 그 반석이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해석합니다(고전 10:4). 우리의 신앙도 상황보다 먼저 하나님의 성품을 붙드는 데서 시작됩니다. 삶이 흔들릴 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해결책보다 변하지 않는 반석 위에 다시 서는 것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어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의 선하심보다 상황을 먼저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자신들의 역사를 깊이 되돌아보라고 권면합니다. 그 시작은 바벨탑 세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세대가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심판하실 수도 있었지만, 장차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기업인 이스라엘이 나올 것을 아셨기에 인류를 보존하셨습니다. 광야의 "황량하고 짐승이 울부짖는 사막"에서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으로 백성을 감싸 보호하셨으며, 당신의 눈동자처럼 지켜 주셨고, 독수리가 새끼를 정성껏 돌보듯 이스라엘을 보호하셨습니다. "주님께서만 홀로 그 백성을 인도하셨다. 다른 신은 옆에 있지도 않았다."(12절)
성경은 믿음을 '새로운 것을 찾는 것'보다 은혜를 기억하는 것으로 자주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독수리가 새끼를 날게 하기 위해 날개 아래 받쳐 주듯 그들을 훈련하셨습니다. 독수리는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지만, 추락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떨어질 때마다 날개로 받아 올립니다. 하나님의 훈련도 그렇습니다. 때로는 편안한 둥지를 떠나게 하시지만, 결코 버리시지는 않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임재의 자리였습니다.
✦ 나를 향한 질문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내 삶을 인도하신 흔적들을 얼마나 자주 기억하고 감사합니까?
모세는 이제 이스라엘의 미래를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땅의 높은 곳", 곧 약속의 땅에 정착시키셨고, 가장 좋은 곡식과 열매, 풍성한 가축, 필요한 모든 것을 넉넉히 공급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살찌자 발로 찼습니다"(15절). 풍요 속에서 자신들을 지으시고 모든 복을 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와 가증한 행위에 빠져들었습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을 찾던 백성이 가나안에서는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문제는 고난보다 풍요였습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배부를 때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풍요는 하나님을 대체하는 우상을 만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더 사랑하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모든 것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죄의 시작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잊는 것입니다. 감사가 사라질 때 우상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받은 복을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통로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착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의 행동을 보시고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자신의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기시고, 침략군을 보내시며, 들짐승과 전염병과 재앙과 기근으로 그들을 징계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방 민족들이 이스라엘의 멸망을 자신들의 힘 때문이라고 착각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키셨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나의 얼굴을 숨기겠다."(20절). 성경에서 하나님의 얼굴은 임재와 은혜, 보호와 평안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신다는 것은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시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선택한 삶의 결과를 경험하도록 허락하시는 언약적 징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결코 포기가 아닙니다. 징계의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회복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훈계하는 이유가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세우기 위함인 것처럼, 하나님도 자신의 백성을 다시 돌이키기 위해 징계하십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내 삶에서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한 순간이 있었습니까? 그 침묵이 완전한 버림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요?
모세는 만일 이방 민족들이 지혜로웠다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철저하게 패배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기 때문이지, 결코 이방 민족들의 힘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원수 한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 천 명을 물리치고, 둘이서 만 명을 도망치게 할 수 있었겠는가?"(30절). 이스라엘의 비참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닮은 그들의 죄 때문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모든 일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다시 자신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의지했던 모든 우상들에게 "너희를 구해 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 어떤 우상도 그들을 구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상하게도 하시고, 낫게도 하시며,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유일하신 주권자이십니다.
"이제는 내가 곧 그인 줄 알라." 하아지누의 절정은 하나님의 자기 선언입니다. 사람들은 위기가 오기 전까지는 자신이 의지하던 것들이 자신을 지켜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만이 상하게도 하시고 고치기도 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인간이 만든 우상은 약속은 하지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심판과 회복을 함께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이 선언은 훗날 메시아를 통해 드러날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바라보게 합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내 삶에서 가장 큰 안전장치는 무엇이라고 여기나요?
그 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원수들에게 진노를 쏟으십니다. "피살자와 포로들의 피, 적장의 머리에서 나온 피, 내 화살이 이 피를 취하도록 마시고, 내 칼이 그 고기를 실컷 먹을 것이다."(42절).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의 피를 갚으시는 그날, 세상의 모든 민족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모세의 노래(하아지누)가 마무리됩니다.
"모든 나라들아, 주님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여라."(43절). 하아지누는 놀랍게도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괴롭힌 악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그 심판은 분노를 풀기 위한 감정적인 보복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마지막 절은 놀라운 반전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대상은 이스라엘만이 아닙니다. 열방도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바울은 로마서 15:10절에서 바로 이 구절을 인용하며, 메시아 예수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하아지누의 결말은 심판이 아니라 예배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결국 찬양으로 끝난다"는 이 노래의 구조는, 내가 낙담할 때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모세와 여호수아는 이 노래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칩니다. 모세는 백성에게 간절히 권면합니다.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키게 하십시오. 율법은 단지 빈 말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의 생명입니다. 이 말씀을 순종하십시오. 그래야만 당신들이 요단 강을 건너가 차지하는 땅에서 오래오래 살 것입니다."(46-47절). 이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느보산에 올라가라고 명하십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약속의 땅을 멀리 바라본 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알아야 할 지식'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을 유지하는 양식으로 선포합니다. 말씀을 떠나면 생명을 잃고, 말씀 안에 거하면 생명을 누립니다. 모세는 땅을 소유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생을 마쳤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한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나요?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 중 떠오르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것을 기록해 보세요.
* 히브리어 단어 '알리야'는 '높이 솟음' 또는 '올라감'이라는 의미입니다. 유대교 회당에서 토라를 낭독할 때, 신자들이 율법 낭독에 참여하는 것을 'Aliyah'라고 합니다. 즉, '토라 낭독대에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영적인 상승을 상징합니다. 매일 읽을 분량을 'Aliyah'라고 하는 것은 말씀 앞에 설 때마다 한 단계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을 상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