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차빔(Nitzavim)"이라는 이름은 "서 있다(Standing)"라는 뜻이며, 신명기 29:9절에 나옵니다. "바예레크(Vayelech)"이라는 이름은 "그리고 (모세가) 갔다(And [Moses] went)"라는 뜻이며, 신명기 31:1절에 나옵니다.
모든 백성이 함께 서 있습니다. 위대한 율법학자들부터 나무를 패는 사람과 물을 긷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자리에 섰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소중하며, 각자 반드시 감당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이며 언제나 연합해야 한다는 사실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하실 것입니다. 그들의 땅은 메마르고 황폐해져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될 것이며, 백성은 포로와 흩어짐(디아스포라)의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언젠가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는 새로운 특별한 시대가 열립니다. 모든 사람이 선한 일만을 원하게 되고 세상에서 악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메시아(Moshiach)의 시대, 곧 미래의 구속과 회복의 시대입니다.
때로는 토라를 지키는 것이 너무 어렵게 느껴집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많아서, 마치 넓은 바다를 건너야 하는 것처럼 불가능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토라를 주신 것은 우리가 실제로 그것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순종하려 한다면, 토라는 결코 바다 건너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이 말씀은 네게 매우 가까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실천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갈 때 그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수많은 계명들을 배우며 다소 부담을 느꼈다면, 이 말씀은 큰 격려가 됩니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 함께 존재합니다. 토라는 우리에게 어떤 길이 선한 길인지 분명히 알려 줍니다. 그러나 그 선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하루하루의 순간마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결국 가장 선한 길을 선택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선택하고, 선을 선택하십시오.
바예레크는 모세 생애의 마지막 날을 기록합니다. 모세는 정확히 120세였습니다(그는 태어난 날과 같은 날인 아달월(Adar) 7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약속의 땅 이스라엘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지도자의 사명을 여호수아에게 넘겨주고, 마지막으로 토라 두루마리를 완성하여 레위 사람들에게 맡깁니다. 그들은 이 두루마리를 언약궤 곁에 보관하게 됩니다. 모세는 또한 이 토라를 7년마다 초막절(수콧, Sukkot)에 백성 앞에서 낭독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낭독은 안식년(쉐미타, Shemittah) 다음 해인 하켈(Hakhel)의 해에 이루어집니다. 그때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 곧 남자와 여자와 어린아이가 모두 성전에 모이고, 왕이 토라를 낭독하여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듣고 언약을 새롭게 합니다. 파르샤는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이 때때로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얼굴을 숨기시는 때(하스테르 파님, Hester Panim)가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나 그들의 자손은 다시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며, 토라는 결코 완전히 잊히지 않을 것이라는 소망의 약속으로 마무리됩니다.
생애 마지막 날, 모세는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를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으로 세워졌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이집트와 여행 중 지나왔던 여러 이방 민족들의 우상숭배와 삶의 방식을 따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는 개인이나 가정, 혹은 지파가 맞이하게 될 심각한 결과를 경고합니다. 이 단락은 공동체가 죄를 범한 개인을 적절히 바로잡지 않을 때 공동체 전체도 책임을 지게 된다는 공동체적 책임의 원리로 마무리됩니다.
"니짜빔"(서 있다)은 일반적인 "서다"(오므딤)와 달리 강인하게 버티고 선다는 뉘앙스를 지닙니다. 98개의 저주(28장)를 들은 직후이기에, 이는 "너희는 그 모든 것을 견뎌낼 강한 자들"이라는 랍비적 해석과 연결됩니다. 유대전통은 이 언약을 "아레부트"(상호 책임)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이스라엘은 서로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원리이며 동시에 은밀한 죄는 하나님만이 심판하시고 공동체는 드러난 죄에만 책임진다는 균형을 강조합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나는 얼마나 "서로 책임지는" 태도로 살고 있나요?
모세는 백성에게 죄로 인해 그들이 결국 자신의 땅에서 추방될 것을 알려 줍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들이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하늘 끝에 흩어져 있을지라도 그들을 다시 모아 조상들에게 주셨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할례는 겉을 제거해 안의 더 민감한 부분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유대인들은 회개를 테슈바(Teshuvah)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단순히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회복은 단순한 용서가 아니라, 사랑할 능력 자체의 재창조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내 마음에서 사랑을 가로막고 있는 "굳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흩어진 백성을 다시 모으실 때,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자녀와 토지의 소산, 그리고 가축에 풍성한 복을 주실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것을 권면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 계명은 네게 너무 어려운 것도 아니요,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다 건너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 네 입과 네 마음에 있으므로 너는 그것을 행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순종할 수 없을 만큼 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랍비들은 이 "계명"을 테슈바(회개, 돌이킴)로 해석하며, 그 핵심은 회개가 특별한 자격이나 지식을 요구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이미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0장에서 이 구절을 인용해 믿음의 접근성을 논합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어려운 것"으로만 여기며 순종을 미루고 있지는 않나요?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선과 악, 생명과 죽음 가운데 선택할 자유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선택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도 있고 저주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모세는 백성에게 간절히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택하라." 또한 모세는 자신이 이제 120세가 되었으며 더 이상 백성과 함께 요단강을 건널 수 없다고 말합니다. 대신 여호수아가 그들을 인도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앞서 가셔서 그들의 원수를 물리쳐 주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백성에게 강하고 담대하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 구절이 유대 사상에서 자유의지 교리의 근간이라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영혼이 의롭거나 악할지 미리 결정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은 백성 전체(복수형)에게, "너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리라"는 약속은 개개인(단수형)에게 주어졌다는 문법적 구분이 흥미롭습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내 선택이 상황이나 환경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체념한 부분이 있지는 않나요?
모세는 여호수아를 불러 "강하고 담대하라."고 격려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보다 앞서 가실 것이며 결코 그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토라 전체를 기록한 후 그것을 제사장(코하님)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맡깁니다. 또한 하켈(Hakhel, 거룩한 집회)의 계명을 명령합니다. 곧 7년마다 안식년이 지난 후 맞이하는 초막절에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를 모두 모아 왕이 토라의 일부를 공개적으로 낭독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세대가 함께 말씀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하켈 규례는 남자, 여자, 어린이, 개종자까지 예외 없이 모여 토라를 들어야 했습니다. 말씀은 특정 계층만의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두가 함께 말씀을 듣고, 함께 언약을 새롭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예배도 세대가 함께 하나님 앞에 서는 언약의 자리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모두가 함께 모여 같은 말씀을 듣는 교회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여호수아를 함께 성막으로 부르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장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될 것을 알려 주십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얼굴을 숨기실 것(Hester Panim)이며, 백성은 많은 재앙과 고난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노래를 기록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입에 두어라. 이 노래가 나를 위한 증인이 되게 하려 함이다." 이 '노래'는 다음 주 토라 본문인 하아지누(Ha'azinu)에서 자세히 등장합니다.
"얼굴을 숨기신다"(헤스테르 파님, Hester Panim)는 표현은 제사장의 축복("여호와의 얼굴이 네게 비추사")과 정반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겉으로는 보이지 않아도 배후에서 계속 작동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 나를 향한 질문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기에, 나는 그 침묵을 부재로 해석하나요, 숨겨진 동행으로 해석하나요?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임하게 되면, 백성은 자신들의 재앙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와 여호수아가 기록한 이 노래는, 그 재앙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죄에 대한 심판임을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완성한 토라 두루마리를 레위인들에게 맡기며, 언약궤 안에 있는 돌판 곁에 두라고 명령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온 백성을 불러 모아 이 노래를 들려줍니다. 이 노래는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워,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의 미래와 그들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미리 경고하셨음을 증언하게 됩니다.
이 노래의 목적은 단죄가 아니라 각성입니다. "이 재앙이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스스로 묻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기록 행위 자체가 후대를 향한 증언이자 책임의 장치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기억하는 공동체' 위에 세워졌습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내 삶의 실패와 고통의 기록을 회피하기보다 기억하고 기록해, 다음 세대에게 증언이 되게 하고 있나요?
불의와 억압의 역사를 기록하고 증언하는 행위는 단순한 과거 청산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향한 예방적 정의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픈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에 얼마나 충실한가요?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 중 떠오르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것을 기록해 보세요.
* 히브리어 단어 '알리야'는 '높이 솟음' 또는 '올라감'이라는 의미입니다. 유대교 회당에서 토라를 낭독할 때, 신자들이 율법 낭독에 참여하는 것을 'Aliyah'라고 합니다. 즉, '토라 낭독대에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영적인 상승을 상징합니다. 매일 읽을 분량을 'Aliyah'라고 하는 것은 말씀 앞에 설 때마다 한 단계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을 상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