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파르샤의 이름인 "Ki Tavo(키 타보)"는 "네가 들어갈 때"라는 뜻이며, 신명기 26장 1절에 나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합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에 정착하여 경작하게 되면, 처음 익은 열매(비쿠림, bikkurim)를 거룩한 성전으로 가져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대해 감사의 고백을 드리라고 가르칩니다.
이 파르샤에는 또한 레위인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십일조 규례, 그리고 앞서 레에(Re'eh) 파르샤에서 언급되었던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선포할 축복과 저주의 예식에 대한 자세한 지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임을 다시 상기시키며, 동시에 그들 또한 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선택하여 언약을 맺은 백성임을 강조합니다.
키 타보의 후반부는 토케하(Tochachah, "책망" 또는 "경고")로 알려진 부분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토라의 율법을 순종하는 백성에게 베푸실 풍성한 축복을 선포한 뒤, 이어서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다면 질병, 기근, 가난, 그리고 포로와 유배와 같은 무서운 재앙이 임하게 될 것을 길고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마지막으로 모세는 이렇게 말하며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이스라엘이 한 민족으로 태어난 지 40년이 지난 바로 오늘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참으로 알 수 있는 마음과 볼 수 있는 눈,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광야 40년의 훈련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성숙에 이르렀음을 의미합니다.
약속의 땅에서 처음 수확한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비쿠림(bikkurim, 첫 열매)의 계명이 소개됩니다. 이 규례는 이스라엘 땅을 대표하는 일곱 가지 소산인 밀, 보리, 포도, 무화과, 석류, 올리브, 대추야자에 적용되었습니다. 농부는 가장 먼저 익은 열매를 성전으로 가져가 제사장에게 드리며,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이었습니다."로 시작하는 신앙고백(신 26:5-10)을 낭독합니다.
이 고백은 단순한 감사기도가 아니라 야곱, 이집트, 출애굽, 가나안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구속사의 요약입니다. 또한 예물을 드린 후에는 하나님 앞에서 가족, 레위인, 나그네와 함께 기뻐하며 잔치를 나누었습니다. 즉 비쿠림은 헌금보다 예배, 소유보다 기억, 감사보다 구원의 역사를 먼저 고백하는 예식이었습니다.
✦ 나를 향한 질문지금 누리는 것 중 "내 힘으로 얻었다"고 착각하기 쉬운 것은 무엇인가요? 결과 이전, "첫 조짐"의 단계에서부터 감사하는 습관이 내게 있나요?
교회는 감사를 개인의 축복으로만 이해할까요, 공동체와 함께 나누는 삶으로 확장하고 있을까요?
성전 시대에는 여러 종류의 십일조가 있었으며, 제사장, 레위인, 가난한 사람, 절기 예배를 위해 각각 사용되었습니다. 이 규례는 3년 주기에 따라 시행되었으며, 셋째 해와 여섯째 해에는 절기를 위한 십일조 대신 레위인, 나그네, 고아, 과부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모든 십일조를 마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명령을 충실히 지켰음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백성과 땅을 축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유대 전통에서는 이 고백을 '십일조 고백(Vidui Ma'aser)'이라고 부릅니다. 십일조는 단순한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하는 제도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 "더 많이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먼저 "주신 것을 명령대로 사용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순종에서 시작됩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내 자원 중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미리 구별해 둔 몫이 있나요? 우리 교회는 약자를 위한 하나님의 경제 원리를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요?
모세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마음과 뜻을 다해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선택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신의 거룩하고 보배로운 백성(Am Segulah, 특별한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고대 근동의 언약 갱신(Covenant Renewal) 형식을 따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만 받은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도 하나님께 충성을 서약하는 언약 백성입니다. 언약은 일방적인 특권이 아니라 상호적인 헌신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교회는 '선택받은 공동체'라는 자부심과 더불어 '섬기는 공동체'라는 책임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책임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요?
요단강을 건넌 후, 백성은 큰 돌을 세워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 율법 전체를 기록해야 합니다. 또한 에발산에는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하나님 앞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념비가 아니라 언약문을 기록한 언약 비석입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종주국과 속국이 언약을 맺을 때 언약문을 돌에 기록하여 공개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시 약속의 땅에 들어가자마자 하나님의 율법을 나라의 기초로 세우도록 명령받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저주의 산인 에발산에 제단이 세워졌다는 것은, 죄가 있는 곳에도 하나님께서 속죄의 길을 함께 마련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실패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있을까요?
여섯 지파는 그리심산에, 여섯 지파는 에발산에 섭니다. 레위인과 제사장들은 언약궤와 함께 두 산 사이에서 축복과 저주를 번갈아 선포합니다. 백성은 각각의 선언 뒤에 "아멘"이라고 응답합니다. 이어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에게 임할 풍성한 축복이 선포됩니다.
유대 전통에서 "아멘"은 "맞습니다."라는 의미보다 "이 언약을 내가 받아들이겠습니다."라는 언약적 동의입니다. 즉 축복과 저주는 단순히 듣는 말씀이 아니라, 백성 스스로 받아들이는 언약의 선언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삶으로 "아멘"하고 있습니까? 교회는 말씀을 아는 공동체입니까, 말씀을 실천하는 공동체입니까?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질 축복이 계속 선포된 후, 토라를 버리는 백성에게 임할 질병, 기근, 전쟁, 포로, 유배 등의 심판이 매우 길게 이어집니다.
유대인들은 이 부분을 토케하(Tochachah, 책망)라고 부릅니다. 회당에서는 지금도 이 본문을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읽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는 저주를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언약 백성이 하나님의 경고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토케하는 저주의 선언이 아니라 언약 백성을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경고입니다.
저주의 근본 원인이 단순한 불순종이 아니라 "풍족할 때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지 않은 것"(28:47)이라 말합니다. 저주의 상당 부분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겪은 억압을 거울처럼 되비추는 구조로, 압제받던 자리에서 다시 압제하는 자리로 뒤집히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 나를 향한 질문가장 풍족할 때, 오히려 감사와 민감함이 무뎌지는 경험이 있지는 않나요?
현재 이스라엘의 모습이 압제받던 자리에서 다시 압제하는 자리에 서있는 것은 아닐까요?
모세는 출애굽 이후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기적을 다시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까지도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마지막으로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붙들 것을 다시 한번 권면합니다.
유대 전통에서는 "사람은 40년이 지나야 스승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광야 40년이 끝난 바로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이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영적 성숙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신앙은 단지 기적을 많이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순종과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가는 과정임을 보여 주는 결론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하나님의 공급을 경험했음에도 "깨닫지 못한 채" 지나쳐온 부분이 있지 않나요?
한국 교회가 사람을 성숙하게 세우는 공동체가 아니라, 성과를 만드는 공동체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시다.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 중 떠오르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것을 기록해 보세요.
* 히브리어 단어 '알리야'는 '높이 솟음' 또는 '올라감'이라는 의미입니다. 유대교 회당에서 토라를 낭독할 때, 신자들이 율법 낭독에 참여하는 것을 'Aliyah'라고 합니다. 즉, '토라 낭독대에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영적인 상승을 상징합니다. 매일 읽을 분량을 'Aliyah'라고 하는 것은 말씀 앞에 설 때마다 한 단계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을 상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