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파르샤의 이름인 "Shoftim(쇼프팀)"은 "재판관들"을 의미하며 신명기 16장 18절에 나옵니다.
파르샤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각 성읍마다 재판관과 관리들을 세워 공정하게 재판하도록 명령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공의로운 사회를 이루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법은 공평해야 하며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범죄 혐의를 받더라도 반드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며, 실제로 그 범죄를 목격한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없이는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없습니다. 또한 재판관은 절대로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돈만 받고 공정하게 판결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토라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판단은 결국 돈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왕을 세우게 되면, 그 왕은 특별한 규례를 지켜야 합니다. 왕은 말을 지나치게 많이 두어서도 안 되고, 아내를 많이 두어서도 안 됩니다. 또한 왕은 토라 두루마리 두 권을 가져야 합니다. 한 권은 보관하고, 다른 한 권은 언제나 자신과 함께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이는 왕이 아무리 높은 권세를 가졌더라도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자신보다 하나님이 더 크신 분임을 늘 기억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사람을 죽이게 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함께 나무를 베다가 한 사람의 도끼날이 자루에서 빠져 다른 사람을 맞혀 죽게 되는 경우입니다. 비록 사고였지만, 죽은 사람의 가족은 분노하여 복수하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안에 도피성을 마련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은 그곳으로 도망가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도피성 안에 있는 동안에는 피해자의 가족이 그를 해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제사장은 백성 앞에 서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싸우실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은 담대히 전쟁에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사람들은 전쟁에서 면제됩니다. 새 집을 지었지만 아직 사용하지 못한 사람, 포도원을 심었지만 아직 그 열매를 누리지 못한 사람, 새로 결혼한 사람,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다른 군사들의 사기까지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전쟁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또한 적과 싸우기 전에 먼저 평화를 제안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의 땅을 점령할 때에도 열매 맺는 나무는 함부로 베거나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을 유지하는 자원을 불필요하게 훼손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들판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고 범인을 알 수 없다면, 가장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은 암송아지를 가지고 특별한 의식을 행해야 합니다. 이 의식은 단순히 살인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절차가 아닙니다. 그 의미는 공동체가 생명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우리 공동체를 떠날 때에도 그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충분한 음식과 보호를 제공하는 것까지 우리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이 율법은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공의 위에 세워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성읍마다 재판관을 세워 "정의를, 오직 정의를 따르라"(신 16:20)고 명령하십니다. 재판은 사람의 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하며, 뇌물과 편견은 정의를 무너뜨립니다.
또한 다양한 우상숭배 행위가 금지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흠이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산헤드린(유대 최고 종교법정)의 판결과 구전 율법(Oral Law)의 권위를 따라야 합니다. 산헤드린의 권위를 거부하는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중대한 죄로 여겨졌습니다.
'정의'라는 단어가 두 번 반복된 것은 목적만이 아니라, 그 목적에 이르는 수단도 의로워야 함을 뜻합니다. 바른 판결은 피해자는 회복을 얻고, 가해자는 회개할 기회를 얻는 판결입니다. 단순한 응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는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정의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내가 판단을 내릴 때,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행위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습니까?
우리 사회에서 재판과 공적 판단이 뇌물이나 편견, 사회적 지위에 의해 흔들리는 곳은 어디입니까?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는 약자를 공정하게 보호하고 있을까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 왕을 세울 것을 명령합니다. 그러나 왕은 말을 지나치게 많이 두어서는 안 되고, 아내를 많이 두어서도 안 되며, 개인의 재산을 과도하게 축적해서도 안 됩니다. 왕은 자신을 위해 토라 두루마리 두 권을 기록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한 권은 언제나 곁에 두고 읽어야 하는데, 이는 왕이 항상 겸손함을 유지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에게 주어진 첫 계명은 겸손의 훈련입니다. 참된 왕이신 예수님은 이 본문을 완전히 성취하신 분으로, 겸손히 종의 형체를 취하셨습니다(빌 2:6-8).
✦ 나를 향한 질문내가 가진 권한이나 영향력(가정, 직장, 교회) 안에서, 나는 그것을 늘리는 데 관심이 있습니까, 아니면 맡겨진 자리에서 겸손하게 섬기고 있습니까?
오늘날 정치, 경제, 종교 지도자들이 재물과 권력을 무한히 축적하는 구조를 우리는 어떻게 분별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코하님)을 자신의 거룩한 종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서 다른 지파처럼 기업을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대신 제사장들은 다음과 같은 제사장의 몫을 받습니다. 일반적으로 잡은 짐승의 고기 일부, 곡식과 양모의 십일조 등, 이러한 제사장 몫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셨습니다.
기업을 받지 못함이 결핍이 아니라, 특권으로 제시됩니다. 하나님 자신이 기업이 되신다는 것은 소유보다 더 큰 부요함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나의 기업이라는 사실을 삶의 우선순위에서 실제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팎에서 공적이고 영적인 직무(성직자, 선교사 등)를 수행하느라 정당한 시장 소득을 얻기 힘든 이들을 교회는 얼마나 존중하며, 어떻게 돌보고 있습니까?
제사장들은 여러 조로 나누어 성전에서 차례대로 섬겼지만, 각 제사장은 자신의 제사를 직접 드리기 위해 언제든지 성전에 올라와 봉사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어 본문은 점술, 복술, 무당, 주술, 강신술 등 모든 신비주의적·주술적 행위를 금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점치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갈 것을 명령하십니다.
점술 금지는 단순한 미신 배격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근본적 욕구를 하나님께 대한 신뢰로 대체하라는 명령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사주, 운세, 혹은 다른 형태의 통제 수단에 의지하려 한 적이 없습니까?
경제적 불안이나 사회적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점술과 유사종교 산업이 번성합니다. 교회는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에 어떤 소망을 전해야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기 위해 선지자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방의 주술이나 점술을 의지할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을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은 선지자의 말을 거역한 사람,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 예언을 하는 사람에게 주어질 처벌도 함께 설명합니다.
이어서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피할 수 있는 도피성에 대한 규례가 다시 언급됩니다. 모세는 세 개의 도피성을 지정하도록 명령하며, 장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영토를 넓혀 주시면 세 개의 도피성을 더 세우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에 대한 약속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행 3:22). 참 선지자의 표지는 그 말씀이 성취되는지 여부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실수와 고의를 구분하지 않고 성급하게 남을 정죄한 적이 없습니까? 나에게 '도피성'과 같은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 사회의 사법제도는 정의와 자비의 균형을 이루고 있을까요?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그 구분이 공정하게 적용되고 있습니까?
사형이나 태형에 해당하는 사건에서는 최소 두 명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거짓 증인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받게 하려 했던 동일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또한 전쟁에 관한 규례가 이어집니다. 전쟁을 앞두고 제사장은 군사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며, 다음과 같은 사람들은 전쟁에서 면제됩니다. 새 집을 짓고 낙성식을 못 한 자, 포도원을 만들고 과실을 먹지 못한 자, 약혼하고 결혼하지 못한 자, 그리고 두려워 떠는 자들입니다.
위증자에게 되갚아지는 형벌(동해보복의 원리)은 복수가 아니라, 거짓 증언이 공동체에 끼치는 해악의 무게를 실감하게 하는 억제 장치입니다. 전쟁 면제 규정은 국가의 필요보다 개인의 삶의 정황(새집, 결혼, 두려움)을 존중하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를 보여줍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내가 하는 말이 누군가의 삶에 어떤 무게로 작용하는지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전쟁이나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가장 연약한 이들을 배려하는 정책과 문화가 우리 사회에 있습니까?
적과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평화를 제안해야 합니다. 상대가 이를 거절할 경우에만 전쟁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에서는, 평화 제안을 거절하면 그들을 완전히 진멸하도록 명령하십니다.
또한 성을 포위하는 동안에도 열매 맺는 나무를 베어서는 안 됩니다.
파르샤는 마지막으로, 범인을 찾지 못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시행하는 에글라 아루파(Eglah Arufah, 암송아지 의식)에 관한 규례를 설명하며 마무리됩니다.
전쟁조차 화친의 제안으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은, 폭력이 최후의 수단이지 첫 번째 선택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과실수를 베지 못하게 하신 명령은 유대교에서 Bal Tashchit(בל תשחית)라는 매우 중요한 윤리로 발전했습니다. 뜻은 "쓸데없이 파괴하지 말라."입니다. 환경윤리의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갈등이 생겼을 때 화해를 먼저 제안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방어와 공격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까?
환경을 지키는 일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청지기 사명임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 중 떠오르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것을 기록해 보세요.
* 히브리어 단어 '알리야'는 '높이 솟음' 또는 '올라감'이라는 의미입니다. 유대교 회당에서 토라를 낭독할 때, 신자들이 율법 낭독에 참여하는 것을 'Aliyah'라고 합니다. 즉, '토라 낭독대에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영적인 상승을 상징합니다. 매일 읽을 분량을 'Aliyah'라고 하는 것은 말씀 앞에 설 때마다 한 단계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을 상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