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파르샤의 이름인 "발락(Balak)"은 모압 왕 발락을 가리키며, 민수기 22장 2절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연이은 승리를 두려워한 발락은 예언자 발람을 고용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입을 막으시고 오히려 축복의 말씀만 선포하게 하십니다.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의 연이은 승리를 보고 두려워합니다. 그는 이방인 예언자 발람에게 사신을 보내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나타나 모압으로 가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결국 발람이 길을 떠나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길을 막으십니다. 나귀는 천사를 보고 멈추지만 발람은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열어 말하게 하시고, 이후 발람도 천사를 보며 경고를 듣습니다.
발락은 장소를 바꿔가며 세 차례 저주를 시도하지만, 발람의 입에서는 번번이 축복이 흘러나옵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시는데, 내가 어떻게 저주하랴!" 발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만 전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올 것이다." 발람은 떠나기 전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남깁니다. 또한 "야곱아, 너의 장막이 어찌 그리도 좋으냐!"는 선포는 오늘날 유대인들이 회당에 들어설 때 암송하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외부의 저주로는 무너지지 않았던 이스라엘이 모압과 미디안 여인들의 유혹에 빠져 우상 바알브올을 섬기게 됩니다. 전염병이 퍼지는 가운데,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죄를 범한 자들을 처단하자 전염병이 멈추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방금 아모리 족속과 바산 족속을 정복했습니다. 모압의 왕 발락은 자기 나라가 다음 공격 대상이 될까 두려워합니다. 그는 미디안 땅에 있는 유명한 이방인 예언자이자 점술가인 발람에게 사신을 보내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나타나셔서 모압으로 가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집트에서 나온 그 백성은 복을 받은 백성이니 저주하지도 말아라."(민 22:12)
발락은 이스라엘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두려움의 시선으로 이스라엘을 바라보았습니다. 두려움은 종종 상대를 실제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로 보게 만들고, 결국 적대와 배제를 정당화합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두려움 때문에 누군가를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두려움을 이용해 갈등과 혐오를 확대하는 정치와 미디어는 어떤 모습이 있을까요?
발람은 발락의 사신들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전합니다. 그러자 발락은 더 높은 지위의 사절단을 보내고, 큰 부와 명예를 약속하며 다시 요청합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다시 나타나십니다. 이번에는 가는 것을 허락하시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만 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십니다.
발람은 첫 거절 이후 다시 묻습니다. 물질적 유혹 앞에서 "한 번 더 확인해보자"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욕망의 정당화가 되어선 안 됩니다.
✦ 나를 향한 질문이미 하나님의 뜻이나 양심의 소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세상의 이익이나 물질적 유혹 때문에 "이번 한 번만 원칙을 바꿀 순 없을까?"라며 타협안을 찾고 있진 않나요? 오늘날 종교와 정치, 언론은 구조적 탐욕 앞에서 직업적 윤리와 양심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을까요?
발람은 모압의 귀족들과 함께 길을 떠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칼을 든 천사를 보내 그의 길을 막으십니다. 발람은 천사를 보지 못하지만, 그가 타고 있던 암나귀는 천사를 보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합니다. 발람이 나귀를 때리자,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암나귀가 말을 하게 하십니다. 암나귀는 자신을 때리는 이유를 묻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 발람의 눈을 열어 주시자 그는 천사를 보게 됩니다. 천사는 발람이 암나귀를 학대한 것을 꾸짖고,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만 전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이 겸손의 사건 이후 발람은 모압에 도착하여 발락의 영접을 받습니다.
발람은 예언자이지만 암나귀보다 못한 영적 시야를 가졌습니다. 직분과 영성은 별개입니다. 직분이 영적 분별력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보다 낮다고 여긴 존재(사람, 상황, 작은 목소리)가 실은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고 있었던 적이 있습니까? 권력과 명성을 가진 종교 지도자나 전문가가 윤리적 경계를 넘는 사례를 우리는 자주 봅니다. "직분"이 도덕적 면책이 되는 구조를 어떻게 견제할 수 있을까요?
발람의 지시에 따라 발락은 일곱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는 그 말씀을 발락과 귀족들 앞에서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시는데, 내가 어떻게 저주하며, 주님께서 꾸짖지 않으시는데, 내가 어떻게 꾸짖으랴!"(민 23:8) 발람은 이스라엘을 향한 아름다운 축복과 찬양을 선포합니다. 발락이 화를 내자, 발람은 자신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만 전할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복이라 하신 것은 어떤 의식(儀式)으로도 저주할 수 없습니다. 종교적 형식이 하나님의 뜻을 조작하는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복은 그들의 도덕적 완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합니다.
✦ 나를 향한 질문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개입일 가능성을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일부 교회가 특정 집단을 배제하거나 정치적 목적에 동원될 때, 우리는 어떻게 분별해야 할까요?
발락은 다른 장소라면 저주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발람을 새로운 곳으로 데려갑니다. 그들은 다시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야곱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하셨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서 어떤 잘못도 발견하지 못하셨다."(민 23:21) 발람은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인간의 변덕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발락은 환경을 바꾸면 하나님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자리에 구속되지 않으십니다.
✦ 나를 향한 질문"방법을 바꾸면 결과가 달라지겠지"라는 발락식 접근을 나는 신앙에서 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사회는 제도와 구조의 문제를 외면한 채 표면적인 해결책만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발락은 마지막 희망을 품고 발람을 또 다른 장소로 데려갑니다. 세 번째로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지만, 이번에도 발람의 입에서는 축복만 나옵니다. 그는 유명한 축복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야곱아, 너의 장막이 어찌 그리도 좋으냐! 이스라엘아, 너의 사는 곳이 어찌 그리도 좋으냐!"(민 24:5)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으며, 그들을 대적하는 민족들을 물리치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너에게 복을 비는 이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 것이다."(민 24:9) 결국 발락은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발람을 돌려보냅니다.
"마 토부 오할레카 야아코브"(מַה-טֹּבוּ אֹהָלֶיךָ יַעֲקֹב)(민 24:5) — 이 구절은 오늘날 유대인들이 회당에 들어설 때 암송하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저주하러 온 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 예배의 언어가 된 것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내가 막으려 한 것이 오히려 축복의 통로가 된 경험이 있습니까? "네 장막들이 아름답다"는 선포는 공동체의 거처, 곧 주거권과 연결됩니다. 오늘날 주거 불안정, 강제 철거, 홈리스 문제에 직면한 이들에게 "아름다운 거처"란 무엇일까요?
떠나기 전에 발람은 마지막 예언을 전합니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올 것이다. 한 통치 지팡이가 이스라엘에서 일어설 것이다."(민 24:17) 이 예언은 전통적으로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됩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과 미디안 여인들의 유혹에 빠져 우상 바알브올을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한 자들을 심판하라고 모세에게 명령하시고, 동시에 치명적인 전염병이 이스라엘 가운데 퍼집니다. 그때 이스라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시므리가 공개적으로 미디안 공주와 함께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론의 손자인 비느하스는 열심으로 그들을 처단하고, 그 결과 전염병이 멈추게 됩니다.
외부의 저주로는 무너지지 않았던 이스라엘이 내부의 유혹으로 스스로 무너집니다. 공동체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외적 적이 아니라 내적 부패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외부의 비난과 압력에는 잘 견뎌낸 후, 내면의 유혹과 타협에는 무너지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 사회가 내부적 분쟁과 갈등에 직면했을 때, 비난에만 그치지 않고 공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법적·제도적 책임을 묻고 사회를 정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 중 떠오르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것을 기록해 보세요.
* 히브리어 단어 '알리야'는 '높이 솟음' 또는 '올라감'이라는 의미입니다. 유대교 회당에서 토라를 낭독할 때, 신자들이 율법 낭독에 참여하는 것을 'Aliyah'라고 합니다. 즉, '토라 낭독대에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영적인 상승을 상징합니다. 매일 읽을 분량을 'Aliyah'라고 하는 것은 말씀 앞에 설 때마다 한 단계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을 상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