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파르샤의 이름인 "추카트(Chukat)"는 "법의 율례(Statute)"라는 뜻이며, 민수기 19장 2절에 나옵니다. 이번 파르샤는 광야 40년 생활의 마지막 시기, 정확히는 38년째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체와 접촉하여 부정하게 된 사람이 정결하게 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붉은 암송아지의 재에 물을 섞어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뿌리면 정결하게 됩니다. 정결한 자를 부정하게 만들고 부정한 자를 정결하게 하는, 인간의 논리를 넘어선 하나님의 율례입니다.
광야 40년째에 미리암이 죽고 우물이 마르자 백성들이 불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위에게 말하라고 명령하셨으나, 모세는 화를 내며 바위를 두 번 쳤습니다. 물은 흘러나왔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에돔 땅 통과를 요청하지만 거부당해 우회합니다. 이후 호르 산에서 아론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 엘르아살이 대제사장 직분을 이어받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30일 동안 애도합니다.
에돔을 돌아가는 긴 여정에 지친 백성들이 다시 불평하자 불뱀(독사)이 진영을 공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게 하시고, 뱀에 물린 자가 그것을 바라보면 치유를 받았습니다.
모세는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승리하고, 요단강 동쪽 땅을 정복합니다. 이스라엘은 마침내 요단강 강변에 이르러 약속의 땅 입성을 눈앞에 두게 됩니다.
가장 심각한 의식적 부정 가운데 하나는 '투맛 메트'(tum'at met), 즉 시체와 접촉함으로써 생기는 부정입니다. 이 부분은 이러한 부정에 걸린 사람이나 물건이 정결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 태우고, 여기에 몇 가지 재료를 더하여 재를 만듭니다. 그 재에 흐르는 물을 섞어, 시체와 접촉한 후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이 물을 사람이나 물건에 뿌립니다. 이후 미크베(mikvah)에 몸을 담그면 그 사람이나 물건은 부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정결한 자를 부정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부정한 자를 정결하게 합니다. 인간의 공로나 논리를 넘어선 하나님의 구원 방식을 신뢰하는 것이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누군가를 회복시키기 위해 내가 불편해지거나 손해를 감수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 사회에서 '부정하다'는 낙인이 찍힌 사람들(전과자, 노숙인, 정신질환자 등)의 회복을 위해 공동체가 감수해야 할 비용은 무엇일까요?
정결 의식에 대한 설명이 계속됩니다. 부정한 사람은 정결 예식이 끝나기 전까지 성막이나 성전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경고도 함께 주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시작한 지 40년째 되던 해에 미리암이 죽습니다. 미리암이 죽은 이후 우물도 마르게 됩니다. 물이 부족해지자 백성들은 심하게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미리암은 출애굽 시작부터 광야의 마지막까지 공동체를 섬긴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과 함께 우물이 마르기 전까지 사람들은 그 은혜를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헌신과 수고를 당연하게 생각하다가 그 사람이 떠난 후에야 그 가치를 깨닫습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미리암'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사회의 필수적 돌봄 노동(간호사,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등)은 주로 여성이 담당하며 저평가됩니다. 미리암처럼 공동체를 지탱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특정한 바위 앞에 백성들을 모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그 바위에게 말하면 물이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을 모으지만, 모세는 바위에게 말하는 대신 바위를 칩니다. 물은 흘러나왔지만, 이 사건 속에서 그들은 중대한 잘못을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이 "나를 신뢰하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나를 거룩하게 하지 않았다"며 두 사람 모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모세의 실수는 무엇일까요? 분노? 불신앙? 하나님의 영광 탈취? 어쩌면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자기 방식대로 수행"한 것입니다. 결과는 맞지만 과정이 달랐습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내 방식을 고집한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정치 지도자가 "결과는 좋았지만 과정이 잘못된" 방식으로 일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절차적 정의는 왜 중요할까요?
모세는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에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 그의 영토를 통과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모세는 지나가는 동안 땅에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 에돔은 끝내 통행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에돔을 우회해야 했고, 가나안 땅을 동쪽 방향에서 접근하게 됩니다.
에돔은 에서의 후손, 즉 이스라엘의 형제 민족입니다. 형제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는 가슴 아픈 장면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정당한 도움 요청을 거절당한 경험이 있습니까? 그때 나는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우리나라는 아직도 난민이나 이주민을 수용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호르 산에 도착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와 아론, 그리고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이 산에 오릅니다. 아론은 대제사장의 의복을 벗어 엘르아살에게 입히고, 그 후 세상을 떠납니다. 온 이스라엘은 아론의 죽음을 슬퍼하며 30일 동안 애도합니다. 한편 백성들은 다시 음식에 대해 불평하며 만나가 지겹다고 말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불뱀(독사)을 보내시고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모세가 백성을 위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명령하십니다. 뱀에 물린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보면 치유를 받았습니다.
아론의 죽음은 한 시대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엘르아살에게 직분이 이어지면서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계속됩니다. 놋뱀 사건은 문제 자체보다 시선의 방향이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치유는 놋뱀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삶의 어려움 속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우리 사회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혐오와 희생양 찾기에 몰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스라엘은 계속 이동하여 요단강 동편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 부분에는 아르논 골짜기를 통과할 때 일어난 큰 기적이 암시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모리인들이 골짜기 양편 높은 절벽에 숨어 이스라엘을 매복 공격하려 했으나, 기적적으로 양쪽 산이 서로 가까워지며 움직여 숨어 있던 아모리 군대를 짓눌러 버렸습니다. 이 부분은 광야 생활 동안 이스라엘에게 물을 공급해 준 우물에 대한 찬양의 노래로 마무리됩니다.
이스라엘은 몰랐습니다. 자신들이 지나온 골짜기에 얼마나 큰 위험이 있었는지,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것을 미리 막아주셨는지를. 우물의 노래는 뒤늦게 알게 된 은혜에 대한 고백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지금 돌아보면, 그때는 몰랐지만 하나님이 막아주셨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까? 우리 사회는 감사의 문화보다 소비와 불만의 문화가 더 강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스라엘은 요단강 동편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에 이릅니다. 그들은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그의 영토를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시혼은 이를 거부하고 군대를 모아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아모리 땅을 차지합니다. 이어 바산 왕 옥도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지만, 이스라엘은 다시 승리합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마침내 요단강 강변에 도착하여, 약속의 땅 여리고 맞은편에 진을 치게 됩니다.
끝까지 대적하는 세력을 물리치고 약속의 땅 입구까지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그들의 군사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과정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지금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시혼'과 '옥'이 있습니까? 그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 중 떠오르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것을 기록해 보세요.
* 히브리어 단어 '알리야'는 '높이 솟음' 또는 '올라감'이라는 의미입니다. 유대교 회당에서 토라를 낭독할 때, 신자들이 율법 낭독에 참여하는 것을 'Aliyah'라고 합니다. 즉, '토라 낭독대에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영적인 상승을 상징합니다. 매일 읽을 분량을 'Aliyah'라고 하는 것은 말씀 앞에 설 때마다 한 단계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을 상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