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파르샤의 이름인 '코라흐(Korach)'는 모세와 아론에 대한 반란의 우두머리인 고라를 가리키며, 민수기 16장 1절에 나옵니다.
레위 지파 출신의 고라는 아론의 제사장 직분을 시기하여, 다단과 아비람, 250명의 지도급 인사들을 모아 모세와 아론에게 항의합니다. "왜 당신들만 지도자와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까? 온 회중이 다 거룩한 것 아닙니까?" 그들은 스스로 자격을 증명하겠다며 향을 준비하여 성막 앞에 나섰습니다.
갑자기 땅이 갈라져 고라와 다단, 아비람을 삼켜 버렸고, 불이 나와 향을 드리려 했던 250명을 모두 태워 버렸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이 장면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이 계속 불평하자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론은 급히 향로를 들고 백성 가운데 뛰어들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니" 전염병이 멈추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두 지파의 지팡이를 성막 지성소 앞에 두게 하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오직 아론의 지팡이만 싹이 나고 꽃이 피며 살구(아몬드) 열매까지 맺었습니다. 죽은 나무막대기에서 생명이 돋아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받을 몫과 의무를 규정하십니다. 그들은 땅 대신 하나님 자신을 기업으로 받으며, 이스라엘 백성의 십일조로 생계를 이어갑니다. 레위인들은 받은 십일조에서 또 십일조를 떼어 제사장들에게 드려야 합니다.
고라는 모세의 사촌으로,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는 반란을 일으킵니다. 몇몇 주동자들과 함께 250명의 지도급 인사들을 모아 놓고 모세와 아론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온 회중이 다 거룩하고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계신데, 어찌하여 당신들이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를 높입니까?" 특히 그들은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임명된 것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다음 날 시험을 통해 누가 진정 대제사장의 직분을 맡을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자고 제안합니다. 모세는 반역자들을 설득하여 이 위험한 시험에 참여하지 않도록 만류하지만, 그들은 듣지 않습니다.
고라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어 보입니다. "모두가 거룩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의 동기는 공동체의 평등이 아니라, 아론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이었습니다. 진리처럼 들리는 말도 그것을 사용하는 목적이 권력욕일 때 위험한 무기가 됩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공정함"이나 "평등"이라는 좋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실제로는 내 욕심이나 상처를 정당화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사회에서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또 다른 특권을 추구하는 모습은 없지 않습니까?
모세는 하나님께 반역자들의 향 제사를 받지 말아 달라고 간구합니다. 한편 고라는 밤새 백성들을 선동하여 모세를 대적하게 만들고, 다음 날 성막 입구에 온 회중을 모아 이 사건을 지켜보게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고라는 '밤 사이'를 이용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듭니다. 불만과 분노는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빠르게 번집니다.
✦ 나를 향한 질문누군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나 루머를 들었을 때, 사실 여부를 차분히 확인하기보다 나도 모르게 다수의 분위기에 휩쓸려 정죄의 자리에 동참한 적은 없나요? 미디어나 SNS를 통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향한 혐오와 선동이 밤새 확산되는 시대입니다. 정보를 소비하고 공유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어떤 책임감을 가져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고라와 함께한 백성들에게 진노하시며 그들을 멸하려 하십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이 백성을 위해 중보기도하자 심판이 거두어집니다. 곧 땅이 갈라져 고라와 그의 가족들을 삼켜 버리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향을 드리던 250명의 반역자들을 태워 버립니다. 이후 모세는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향로들을 거두어 제단을 입히게 하는데, 이는 아론의 제사장 직분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경고의 표지가 됩니다. 그러나 다음 날 백성들은 오히려 모세와 아론을 비난하며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다"고 항의합니다.
심판이 내렸는데도 백성들은 더 원망합니다. 심판을 보고도 배우지 못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완고함입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을 비난하는 그 백성을 위해 또다시 엎드립니다. 중보는 감정이 아니라, 소명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위해 중보할 수 있습니까? 그 힘은 어디서 올까요? 사회적 참사나 역사적 비극을 겪은 후에도 우리 사회는 깊은 구조적 성찰보다 진영 간 탓하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라의 사건 이후 백성의 반응과 어떻게 닮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리라." 말씀하시자, 그 즉시 전염병이 백성 가운데 퍼져 수많은 사람이 죽기 시작합니다. 모세는 아론에게 향로에 불과 향을 담아 급히 백성들 가운데 들어가 속죄하라고 명령합니다. 아론은 순종하여 백성 가운데 서게 되고,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니" 전염병이 멈추게 됩니다.
아론은 자신을 돌로 치려 했던 백성들이 전염병으로 쓰러질 때, 재앙이 휘몰아치는 그 한복판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타인의 고통과 파멸을 막기 위해 자신의 안위를 던지고 경계선에 서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을 치유하는 제사장적 사명입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아론처럼 위험을 감수하며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는 중보자입니까, 아니면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사람입니까? 오늘 우리 사회에서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유명한 "지팡이 시험"이 기록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열두 지파의 지휘관들로부터 각각 한 개의 지팡이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십니다. 각 지팡이에는 지파 지도자의 이름을 기록하고, 레위 지파를 대표하는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씁니다. 이 지팡이들을 성막 지성소 앞에 밤새 두었는데, 다음 날 아침 확인해 보니 오직 아론의 지팡이만 싹이 나고 꽃이 피며 살구(아몬드) 열매까지 맺었습니다. 이는 아론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대제사장이라는 또 하나의 명백한 증거였습니다.
마른 나무 막대기에서 꽃이 핍니다. 생명이 없는 곳에서 생명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선거나 인기투표와 다릅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내 소명과 은사를 스스로 증명하려 애씁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때에 드러내실 것을 신뢰합니까? 청년 세대가 취업, 진로, 사회적 인정을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하나님이 꽃 피우신다"는 신뢰를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의 지팡이를 다시 지성소에 보관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후세를 위한 증거가 됩니다. 백성들은 실수로 성막의 금지된 영역에 들어갔다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고,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성막을 철저히 지키도록 명령하십니다. 이어 토라는 제사장들이 받을 몫에 대해 설명합니다. 특정 제물의 고기, 장자의 속전(다섯 세겔), 곡식·기름·포도주의 첫 소산, 첫 열매(초실절 헌물) 등이 포함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아론에게 그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땅에서 별도의 기업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대신, "내가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라."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유산이 되십니다.
레위 지파와 제사장들은 성막 봉사를 위해 토지 분배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농경 사회에서 땅이 없다는 것은 생존권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생계 걱정 없이 공적 직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도적 안전망('응분의 몫')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는다는 것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드러난다고 생각합니까? 교회와 종교 기관이 부동산을 축적하고 세습하는 문제는 제사장직의 정신 — "하나님이 기업" — 과 어떻게 충돌할까요?
레위인들 역시 이스라엘 땅의 분배를 받지 못합니다. 대신 그들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소출의 십일조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성막과 성전에서 봉사한 대가입니다. 레위인들은 이 십일조를 받은 후, 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따로 떼어 제사장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공동체 안에서 섬김과 예배가 지속될 수 있는 질서를 세우십니다.
레위인은 받은 것에서 드립니다. 그들은 땅이 없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받고 다른 방식으로 드립니다. "내가 받지 않았으니 드릴 수 없다"는 말은 이 본문 앞에서 힘을 잃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은 항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습니다.
✦ 나를 향한 질문나는 "내가 많이 받았을 때" 드리려고 기다립니까, 아니면 지금 받은 것에서 드리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까? 한국 교회의 헌금 문화와 재정 투명성 문제를 이 본문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 중 떠오르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것을 기록해 보세요.
* 히브리어 단어 '알리야'는 '높이 솟음' 또는 '올라감'이라는 의미입니다. 유대교 회당에서 토라를 낭독할 때, 신자들이 율법 낭독에 참여하는 것을 'Aliyah'라고 합니다. 즉, '토라 낭독대에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영적인 상승을 상징합니다. 매일 읽을 분량을 'Aliyah'라고 하는 것은 말씀 앞에 설 때마다 한 단계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을 상징합니다.